- 조민균 노무사
1. 공문없는 행정행위에 대하여
어선원재해 사건을 대리하면서 반복적으로 마주친 문제가 있었다. 수협중앙회가 접수한 서류를 정식 공문(사유 기재) 없이 구두로 “직권 반려”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이는 대리인에게 적법한 공문 형태로 통지하지 않음으로써 절차적 권리를 침해했고, 더 구체적으로는 민원인의 방어권을 침해했으며 사건 지연과 권리 소멸 위험까지 초래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행정행위에 대해 정식 절차로 다툴 수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대부분의 사항을 구두로만 통보함으로써, 부당한 자료보완이나 서류 반송이 이루어져도 정식 구제절차를 밟을 수 없도록 사실상 통로를 차단했다. 심지어 공문을 요청하자 발신인, 수신인, 결재자 정보 등 필수 요소가 빠진 단순 메모 수준의 종이 한 장을 보내온 경우도 있었다.
『 난청 관련 구비 서류
작업환경 측정결과(사업장 소음 측정결과) 위 서류가 더 필요합니다. 』
믿기 어려우나 실제 사례였다. 정식 공문 형식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수협중앙회는 그것이 왜 문제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협중앙회는 민원처리법 제1조, 동법 제2조 제1호 가목 1), 제2조 제3호 다목에 의하여 행정권한을 위임·위탁받은 행정기관에 해당하므로, 민원처리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었다. 민원처리법 제9조 제1항은 접수를 보류하거나 거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접수된 민원문서를 부당하게 되돌려 보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사소한 흠결을 이유로 공문조차 없이 반려하는 관행은 법 조문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더 나아가 어선 및 어선원재해보상보험법 제21조, 제57조 역시 수급권자의 청구가 있으면 기관이 승인 또는 불승인 등 처분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지만, 수협중앙회는 이 의무조차 지키지 않았다.
‘구두 반송’과 ‘무통지’가 중대한 절차 위법이 되는 이유도 분명했다. 모든 행정행위(진찰 요구, 보완 요구, 처분 통지, 반송 등)는 적법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에게 서면(공문)으로 통지되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자료보완 요청조차 공문 없이 백지에 필요한 자료 목록만 적어 보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는 “요청 내용만 알면 되고, 어느 본부 어느 담당자가 보냈는지는 증거로 남기지 않겠다”는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는 행태였다.
더 큰 문제는 처분문서였다. 처분문서는 대리인이 ‘별도로 요청해야만’ 송부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처분문서가 누락되면 대리인은 해당 처분이 적법하게 이루어졌는지 제척기간 내에 검토할 수 없었다.
서울행정법원 2019구단74211 판결은 이러한 수협의 무분별한 반려행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이는 현행 관행의 위법 가능성을 방증하는 사례이며, 반복적·구조적 관행으로 이어진다면 감사원이나 감독 부처가 반드시 문제 삼아야 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수협중앙회는 정식 공문을 발부하지 않음으로써 적법하게 다툴 수 있는 통로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왔다.
2. 재청구와 재처분, 그리고 소멸시효 도과 문제
대법원 1993. 4. 13. 선고 92누17181 판결은 “종전 처분이 불복기간 경과로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요양급여청구권 자체가 부정된 것은 아니므로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이상 다시 요양급여를 청구할 수 있고, 그 청구가 거부된 경우 새로운 거부처분으로서 그 위법 여부를 다툴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근로복지공단, 공무원연금공단 등 다수의 행정기관은 최초 처분의 불복기간이 지나더라도 재차 요양급여를 청구할 수 있도록 했고, 그에 대한 거부처분을 통해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운영해왔다.
그러나 수협중앙회는 이러한 재처분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채 단순히 “법률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을 반복했고, 재청구 후 현재까지 약 1년 가까이 아무런 처분을 하지 않았다. 재처분(새로운 거부처분)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비록 최초 처분이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아 여전히 다툴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재해자는 이의제기나 행정소송 등 권리 실현 수단을 전혀 활용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됐다. 결국 이러한 미비한 행정절차로 인해 수많은 재해자들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소멸되어 왔다.
3. 결론
산재보상의 신속화가 국가적 기조로 자리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선원 재해보상 영역은 오히려 역주행하고 있는 현실을 확인했다. 수협중앙회는 공문 없는 반려, 절차 없는 행정으로 일관했고, 이는 재해자의 권리를 사실상 봉쇄하는 결과를 낳았다.
재청구와 재처분 제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력화하는 행정의 태만은 권리구제의 길을 원천 차단해왔다. 그 결과 소멸시효만 도과하게 만들어 재해자들의 권리를 형해화시켰다.
어선원은 육상근로자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각종 위험에 노출되어 왔다. 그러나 정작 제도적 보장은 더 후퇴했고, 권리구제의 문턱은 더욱 높아졌다. 이는 단순한 행정편의가 아니라 구조적 권리침해에 해당했다.
따라서 수협중앙회는 법률상 의무인 공문 통지와 재처분 절차를 즉시 정상화해야 한다. 아울러 감독부처와 감사원은 반복적·구조적 위법 가능성에 대해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산재보상 신속화라는 국가적 흐름 속에서, 가장 열악한 어선원의 권리가 역주행하는 모순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출처 : 빌리어즈(https://www.thebilliards.kr)